제 3 장 영견(英堅) 대내마의 후예

1. 영견(英堅)후예 간략한 행적

  시조 주원(周元)의 5세 장손 영진(英珍)의 후예는 청풍파. 부정공파.옥가파. 차손 영길(英吉)의 후예는 평의공파 셋째손 영견(英堅)의 후예는 한림공파이다 영견(英堅)공은 한림랑을 거쳐 헌강왕10년(884)대내마와 태학감조교로 재임중 시중 민공(敏恭)의 부사가 되어 당나라에 들어가 황소(黃巢)의 난을 평정한 공을 치하하고 돌아와 893년에 궁예(弓裔)가 명주를 침공할것을 조정에 고하였다 고려태조가 공의 어짐을 알고 태사로 봉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로 불수하고 아들 견술(堅述)과 견웅(堅雄)이 부응토록하여 견웅(堅雄)이 예부상서.호부상서를 지냈고 장자 징우(徵祐)는 현종9년 병부상서로서 거란군 10만이 침공하여 소탕중 왕의 피난에 시종중 적병에 피포되어 거란주가 벼슬을 주며 회유하자 신하는 자기나라의 임금을 위하여 죽는것이 도리이니 빨리 죽여라 하니 거란주는 그의 충절에 감동하여 풀어주어 귀국하여 병부상서를 지냈다. 공의 장자 양(陽)은 현종21년에 명경과에 등재하여 이부상서에 이르렀고 공의 장자 원걸(元傑)은 이부상서를 지냈으며 후예가 신리파. 횡성파가 되고 차자 상기(上琦)는 문종24년 (1070)에 호부상서.이부상서를 역임하고 선묘조정(宣宗廟庭)에 배향 되었다

1) 창덕사봉향위(彰德祠奉享位)

  창덕사 배향 : 한림공파조인 영견(英堅)대내마. 견웅(堅雄)예부상서,호부상서. 징우(徵祐)병부상서 양(陽)이부상서. 원걸(元傑) 이부상서. 상기(上琦) 호부상서,이부상서. 인존(仁存)평장사 영석(永錫)평장사.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9위의 위패를 모신 창덕사를 강릉시 홍제동에서 강릉시 운정동(경포대 입구)로 이전 신축하여 매년 음력4월19일 전국의 자손들이 모여 대례를 올리고 있다.